[대덕 김정식 회장 별세]'반도체 DNA 산증인' 대덕전자 어떻게 키웠나
전자신문 2019-04-11
김 회장이 전자산업에 발을 디딘 것은 우연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서울대 전기과 재학시절 은사인 온현위 박사는 당시 김 회장에게 “학교에서 배운 전공은 어디다 버려두고 다른 일을 하느냐”며 꾸지람을 들었다. 그날 이후 김 회장 머릿속에는 전공을 살려 전자사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50년 동안 위기는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도 우리는 준비하고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그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산업 현장에서 PCB 산업에 대한 발전방향을 확인, 한국에서 변화가 일어날 날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했다. 시작은 초라했지만 일본에서 기술연구를 거친 후 국내 최초 단면 PCB 탄생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그에게 남은 숙제는 오랜 개발기간에 따른 재정난. 흑자전환에 대한 숙제가 남아 있었다.
74년부터 컬러TV용 기판 생산, 80년대 컬러방송시작과 함께 본격적으로 성장. 이후 전자제품 기판 생산을 주력으로 하며 90년대 필리핀공장, 00년대 중국공장, 그리고 국내는 모바일단말기 기판으로 발전.
"PCB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PCB 전문가가 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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