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2002년 말 대선에서 우여곡절 끝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불과 57만 표 차로 누르고 승리했다.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2개월여가 지난 2003년 5월 1일 노동절, 노 대통령의 오른팔 격인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저녁을 하게 됐다. 주간지 편집장단과 자리였다. 나는 당시 진행 중이던 화물연대의 불법 파업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보수든 진보든 방법은 다르지만 부강하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목적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지지로 선출된 노무현 정부가 왜 화물연대의 일탈 행위를 방관만 합니까?"
문재인 수석의 논리가 묘했다.
“역대 정부는 그동안 민民에 대해 불법적 행동을 많이 자행했습니다. 때문에 노동계의 요구가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참고 인내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운영은 관용이 아니라 원칙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그는 일국의 사법권과 법질서를 수호해야 하는 청와대 민정수석보다는 대한변협 인권위원장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2시간에 걸쳐 토론을 나누면서 나는 문 수석이 비록 크고 선한 눈을 가지고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현대사를 결코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마도 그러한 부정적인 생각은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시스템과 절차에 의해 정권을 잡았음에도 여전히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이들은 감사할 줄을 모르는구나….’
나는 바로 이 점에서, 노무현 정권이 자신들의 순수성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향후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후 노무현 정권은 20%대의 낮은 지지율에 허덕였고, 치르는 선거마다 패했다. 결국 2007년 12월 제17대 대선에서는 야당인 이명박 후보가 여당인 정동영 후보를 523만 표 차로 이기고 당선됐다.
노무현과 용서 ②
대의를 위해 희생할 줄 알았던 정치인
글 함영준 2019-05-24
노무현과 용서 ①
'노무현 변호사 영장 4차례 기각' 단독 취재
글 함영준 | 편집 하용희 기자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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