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끝에 악수둔다"의 사소한 이야기.
시장에 갔습니다.
비와서 기분은 별로 좋지 못했습니다. 축축하고 우산써야 하고, 노점들 차양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물줄기도 신경써야 했고, 그러면서 장본 물건도 들어야 하고 발밑도 조심하면서, 한가위 바로 전날 북적이는 사람들 틈을 지나가야 했으니까요.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다들 바쁘고, 파장에 좌판접으면서 이웃과 추석덕담을 나누는 사람들, 점심으로 우동시켜먹는 사람.. 비만 안 오면 더 활기차고 참 좋을 텐데. 이 동네에서 추석 전날 비오는 게 대체 몇 년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참 오랜만입니다.
살 걸 다 사고, 마지막으로 바나나를 사는데,
A.. 아주 좋음. 좋은 만큼 예산초과.
B1.. A다음으로 좋지만 익어 갈라진 게 두 개 있음. 예산적절.
B2.. 위 둘보다 조금 떨어지만 모양은 아담함. 예산적절.
C.. 2/3송이같음. 예산남음.
A와 C가 가장 맛있고 B1도 맛있을 테고, B2가 가장 떨어질 텐데.. 여기서 고를 수 있는 건 B1이 맞겠지만, B2를 골랐다는 거. 오다가 아, 잘못샀구나. ㅎㅎ;;;; 맑은 날이었으면 B1을 샀겠죠. 아저씨도 B1을 추천해주셨는데 왜 B2를 골랐을까. 비오니까 청개구리가 되었나? 몸살기운도 있는데 컨디션이 안 좋으면 판단력도 흐려지나?
대형마트도 재래시장도 바나나값이 천원씩은 올랐더군요. 요즘은 필리핀만이 아니라 멕시코산 바나나까지 들어오던데 왜 오를까. 라면 5봉지값이 4봉지값으로 바뀌었듯이 바나나도 한 송이 크기가 줄거나 개당 사이즈가 주는 식으로 값이 올랐습니다. 하긴 제가 과일판다 생각하면 그 값도 안 받으면 장사하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 이번 추석에 특히 값이 오른 채소가 시금치입니다. 원래 가을 시금치는 이제 자랄 때지 수확철이 아닌데, 추석이 빠르다 보니.. 의외로 단감과 생대추는 제때 마춰 나왔고, 햇밤도 나왔더군요. 마트 중에는 작년밤과 마른대추만 파는 곳도 있었습니다. 파값은 언제부터 온단 하나값이 옛날 비쌀 때정도로 고정된 것 같고 이젠 파전을 많이 하지도 않아 반단도 많더군요.
그 시금치값이 모 SSM에선 한 단에 5천원이었는데, 모 대형마트와 모 독립마트는 4천원에 세일했습니다. 이렇게 비쌀 줄 알았으면 미리 장보는데.. 다른 모 독립마트는 반 단에 4천원, 그리고 시장에서는 한 단에 7-8천원. 그래서 대신 청경채를 사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추석에는 나물비빔밥으로 음복해서 한 단 사기는 했는데, 원래 꼭 시금치를 쓸 필요는 없어서 잎푸른 채소로 나물만 할 수 있으면 됩니다. 언젠가 설이었나 시금치가 8천원쯤 했을 때는 봄동배추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금치가 이렇게 시장보다 대형마트와 SSM에서 더 싼 이유는 계약재배를 하기 때문이죠.
이야기 둘.
저는 어릴 적에 어머니손잡고 동대문주변의 여러 시장을 다닌 적 있고, 서울 중구의 약수시장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 동생보다는 재래시장에 익숙하고 요즘도 5일장가서 장보고다니는 게 재미있지만, 재래시장이 오래 갈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앞으로 한 세대 정도는 그럭 저럭 잘 가겠죠. 베이비붐 세대가 있으니. 거기까지지 싶습니다.
그런데 주차환경을 개선하거나, 아예 건물에 입주하거나, 그게 아니라도 지붕씌운 아케이드를 만들고 길정리를 해 카트끌고 통행하기 편하게 하는 것으로 재래시장이 마트와 경쟁할 수 있을까요? 일단 비가림은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이번만 해도 양손이 자유로웠으면 전날 먹을 사과와 수박을 싸게 더 샀을 겁니다(과일류는 확실하게 장이 마트보다 쌉니다. 품질은 직접 가늠해야 하지만 마트의 과일품질도 고만고만하고 무엇보다 확실하게 비싸서). 지역 명물이나 관광자원으로서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하기 나름이지만, 일상생활공간으로서는 어떨지. 5일장을 예로 들면, 장이 아닌 나머지 4일은 정말 휑하거든요. 대형마트가 온라인-빠른배달에 밀려서 적자보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지역에선 독립마트와 SSM, 다이소가 시장과 일반 가게들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상가와 거리에 생기가 없어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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