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왜 이럴까?] 가슴 속에 묵은 한(恨)의 심리학 - 동아사이언스. 2018.4
- 한(恨)의 심리학
- 한은 심리학적으로 앙심과 비슷한 것.
- "마음 속에서 일단 굳어진 앙심은, 마치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평생토록 마음 속에서 되풀이"
. - 언더독 효과: 약자를 자처하는 심리
- 내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앙심의 심리 => 약자자처(弱者自處)의 심리로 변화
- "한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약자자처의 심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급기야는 타인에게도 ‘약해질’ 것을 강요합니다."
- "겸손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솔직한 태도.
그러나 과도한 자기 비하는 사람들의 눈에 거슬리지 않겠다는 의도에서 시작.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피해자로 기만하려는 것." - 약자자처, 강자배척이 구성원의 소양이 되면, 무리 자체가 정체됨.
자강에 힘쓴 사람을 부당하게 질시.
과도하게 자신을 약자에게 투사.. - 끊임없는 분노: 밖으로 폭발한 앙심
- 과도한 앙심을 품는 성격을, 정신의학에서느 불평 성격(Querulent Personality)이라고 이름지음.
- 이것은 현실 상황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피해 망상과는 다름.
. - 한풀이
- "억울한 일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심리적 모듈은, 진화적 측면에서 분명 적응적 이득"
=>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다면 알 수 있는 바로 그것이다. - 필자는 여기서 다른 논리를 끼워넣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고수하면 세상에는 장님만 남는다"는 말을 인용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연결되는 게 맞을까? 내게는 이 부분이, 에필로그를 위한 준비처럼 읽혔다. 당연히 정신과 의사로서, 종교지도자를 겸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 정치가 되면 글쎄..
저 기사의 필자는 정신과 의사로서 이번 정상회담을 빗대어 과거를 흘려버리자고 했다. 그런데 위안부 협상도 그런 식으로 말할 것인가. 그래서 기사 내용에 저항감도 느꼈는데.. 이현령 비현령인가.
정신과의사의 글로 읽으면 적당하다.
하지만 역사책을 읽던 사람이 보면, 의사의 습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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